전기차 및 ESS 보급 확대에 따라 폐배터리 발생량이 급증하면서, 폐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산업은 자원 순환 경제 구축과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기차(EV)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사용 후 발생하는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전 세계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단순한 폐기물이 아닌, 리튬·니켈·코발트 등 희유 금속을 포함한 ‘도시 광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산업은 순환경제 실현과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폐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의 개념을 시작으로, 국내외 현황, 주요 과제, 그리고 미래 전망을 살펴봅니다.
1. 폐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의 개념
- 재사용 (Reuse): 잔존 수명(SOH)이 80% 이상 남아있는 배터리 팩 또는 모듈을 분해하지 않고 다른 용도(주로 에너지 저장 장치, ESS)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능이 낮아졌지만 아직 안전하게 사용 가능한 경우에 적용됩니다.
- 재활용 (Recycling): 잔존 수명(SOH)이 65% 미만이거나 손상되어 재사용이 어려운 배터리에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고가의 희유 금속을 추출하여 새로운 배터리 제조 또는 다른 산업의 원료로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처리(방전, 파쇄)와 후처리(건식/습식 공정) 과정을 거칩니다.
2. 국내외 현황
가. 국내 현황
- 초기 시장 형성 단계: 국내 폐배터리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폐배터리 발생량이 본격적인 사업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상반기 기준, 한국환경공단이 매각한 사용 후 배터리는 재사용 70개, 재활용 11개에 불과했습니다.
- 인프라 구축: 2020년부터 총 17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6개의 '미래폐자원 거점 수거센터'를 구축, 운영 중입니다. 이 센터들은 사용 후 배터리의 회수, 성능 평가, 보관, 매각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 정부 정책 및 제도:
- 2023년 2월 '핵심광물 확보 전략'을 발표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비중을 20%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 따라 전기차 폐배터리는 순환자원으로 인정되어 폐기되지 않고 재사용 또는 재활용될 수 있도록 합니다.
-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촉진법'(가칭) 제정 등 관련 정책 통합 관리 및 법령 정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 포항시는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 자유특구'로 지정되어 관련 기준을 마련하고 배터리 리사이클링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대량의 배터리를 동시에 평가할 수 있는 배터리 인라인 자동평가센터가 포항시에 구축될 예정입니다.
- 기업 동향: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와 현대차 등 완성차 기업, 그리고 성일하이텍, 에코프로씨엔지, 새빗켐 등 전문 재활용 기업들이 폐배터리 사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국내 중소기업들도 재활용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대기업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나. 해외 현황
- EU (유럽연합):
- 가장 선도적인 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부터 시행된 '배터리 및 폐배터리에 관한 규정'은 배터리 생산부터 재사용 및 재활용에 이르는 전체 수명 주기를 규제합니다.
- 2027년까지 휴대형 폐배터리 63%, 2030년까지 73% 수거 의무를 부과합니다.
- 리튬 회수 목표를 2027년까지 50%, 2031년까지 80%로 설정했습니다.
- 2027년 2월부터는 전기차 배터리, 2kWh 초과 산업용 배터리 등은 '배터리 여권'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며,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을 2030년부터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 미국:
-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자국 내 배터리 생산 및 재활용 생태계 구축을 적극 지원합니다.
- 첨단 배터리 연방 컨소시엄(FACB)을 통해 배터리 활용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2030년까지 미국 내 전체 배터리 사용량의 90% 가량을 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중국:
-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성숙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자원 회수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 전기자동차 제조사를 대상으로 배터리 수거 및 전문 재활용업체 이전을 위한 재활용 채널 및 서비스 아울렛 설치를 의무화합니다.
- 글로벌 시장 전망: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5년부터 연평균 33%씩 성장하여 2030년에는 574억 달러(약 68조 원)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40년에는 약 2,089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3.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의 과제
가. 기술적 과제
- 성능 평가 및 등급화 기술 고도화: 사용 후 배터리의 잔존 수명(SOH), 안전성(SOS) 등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재사용/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이 더욱 정교해져야 합니다. 현재는 SoH 80% 이상은 재사용, 65~80%는 재제조, 65% 미만은 재활용으로 분류하는 기준이 있으나, 이를 더 신뢰성 있고 자동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안전성 확보: 폐배터리는 잔존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폭발 위험이 있으며, 재활용 과정에서도 안전 사고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배터리 해체, 분해, 재활용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자동화된 분해 기술 및 안전 표준 확립이 중요합니다.
- 고효율 희유 금속 회수 기술 개발:
- 건식 재활용: 배터리를 파쇄 후 고온으로 녹여 금속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대량 처리가 가능하지만 에너지 소모가 크고 일부 금속 회수율이 낮을 수 있습니다. 리튬 회수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중요합니다.
- 습식 재활용: 황산 등 화학 물질을 사용하여 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고순도 회수가 가능하지만 폐수 등 2차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환경 친화적인 습식 기술 및 폐수 처리 기술 개발이 요구됩니다.
- 직접 재활용 (Direct Recycling): 양극재 등 활물질을 분리하여 직접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공정이 단순하고 비용 및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다양한 종류의 배터리 처리 기술: LFP 배터리 등 새로운 종류의 배터리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NCM/NCA 배터리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LFP 배터리에서 유가 금속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는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나. 제도적/정책적 과제
- 폐배터리 회수 및 유통 시스템 구축: 전기차 폐배터리의 발생량이 아직 많지 않아 효율적인 수거 및 유통 체계가 미흡합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 회수 의무 강화 등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 성능 평가 및 인증 기준 마련: 재사용 배터리의 성능, 안전성, 잔존 가치에 대한 명확하고 통일된 평가 및 인증 기준이 마련되어야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고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 사업자 육성 및 지원: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기술 난이도를 요구합니다. 인센티브 제공, 연구 개발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 바젤 협약 등 국제 규제 대응: 폐배터리가 유해 폐기물로 분류될 수 있어 국제 간 이동에 제약이 따르는 바젤 협약 등 국제 규제에 대한 이해와 대응 전략 마련이 중요합니다.
- 생애주기 전반의 데이터 관리: 배터리 생산부터 사용, 회수, 재사용/재활용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 정보를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배터리 여권'과 같은 시스템 구축이 필요합니다. (EU는 이미 의무화)
다. 시장 및 경제적 과제
- 초기 시장 불확실성: 폐배터리 발생량의 정확한 예측과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폐배터리 공급량이 재활용 설비의 소화 가능 용량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경제성 확보: 회수된 금속의 순도, 재활용 공정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신규 광물 채굴 대비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재사용 제품의 시장 확대: ESS 시장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재사용 배터리 제품의 활용 분야를 더욱 다양화하고 신뢰성을 높여 시장을 확대해야 합니다.
4. 미래 전망
폐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시장은 전기차 보급 확산과 함께 필수 불가결한 산업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순환경제 구축, 핵심 광물 확보, 환경 보호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핵심 분야이므로, 기술 개발과 제도적 지원이 지속된다면 높은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내 기업들은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폐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산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 미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 확대와 더불어 폐배터리의 발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기술 혁신, 안전성 확보, 제도적 기반 마련, 글로벌 규제 대응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폐배터리는 단순한 환경 부담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자원 순환의 기회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세계 폐배터리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