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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관하여 I

by [MAVERICK] 2009.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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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관하여 I

아직 내 나이가 서른 갓 넘긴 나이인지라 이런 제목을 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우리의 삶에 아주 밀접히 관계하고 있는 까닭에 필자가 그것에 관해 짧은 소견을 이야기해서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주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무겁다고 해서 피하거나 멀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스스로가 부딪혀야 할 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끝’ 혹은 ‘종말’로 인식한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다양한 국면을 취할 수 있다. 죽음은 육체적 측면에서 봤을 때 분명히 ‘끝’을 의미한다. 우리의 육신은 화염의 혀놀림 속에 속절없이 당하는 살덩이들의 집합일 수 있다. 아니면(그것 보다 운이 좋으면) 미생물들의 좋은 영양소가 되고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이 자연으로 회귀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죽음은 남은 자들에 의해 부정을 강요당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요구당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억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제사라던가 아니면 추도식 기타 등등의 추모예식에 이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남은 자들의 관점에서 보여진 것들이다. 정작 우리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죽음에 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은 채로 타인들의 죽음을 애도(실제로 그런 지는 잘 모르겠다)하거나 타인들의 죽음을 접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죽음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해야 한다. 죽음은 소멸의 대명사인 동시에 생성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생성 또한 소멸을 의미하지만 그 소멸의 순간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 또한 예정되어 있다) 비록 죽음의 당사자는 이 새로운 생성의 묘미를 맛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음미하는 것은 뒤따르는 자들의 몫이다. 이들은 앞선 자들의 죽음을 통해 좀 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헐벗고 굶주린 우리의 이웃들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은 여유가 있을 때가 아니라 궁핍할 바로 그 때 실천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비교적 윤택한 삶을 영위하든 그렇지 않든 삶 자체는 고귀하다. 왜냐하면 탄생 자체가 위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탄생을 부정하는 자들은 자신의 삶을 가장 높은 곳에 두고 타인들의 삶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입지를 위해 희생시키려 든다. 이것은 인간이 범하기 쉬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이른 바 처세술 중 하나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 친구, 세상 살 줄 아네’라고 말하거나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답습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떠한 ‘생성의 힘’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종류의 힘을 소비시킬뿐더러 전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힘을 빨아먹기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소모적일 필요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소모의 주체 혹은 소모의 대상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하지원의 고갈은 분명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에너지 발견 및 개발적 측면에서는 장려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자원에 의존하는 것은 필시 전지구적 제국화에 일조할 것이다.(우리는 미국이 많은 지하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타국의 지하자원을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착취의 대상 혹은 주체로서도 마땅치 않다. 오로지 우리 삶의 유일한 주인으로서 행사할 권리만 부여받은 것이다.  

이러한 주권은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 근 1~2세기 전부터 알려지게 된 것임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권을 행사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이웃들이 있다. 우리의 삶은 그러한 친구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때에 비로소 참다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인 것이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 세상을 밝고 역동적이게 만들 수 있는 죽음, 그러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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